그냥, 다시 써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내가 디지털 딜레이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Flight Time 을 써보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나한테 잘 맞을지도?' 하는 것이다.
물론 최대한 두텁고 따뜻한 질감의 디지털 딜레이에 한해서다.
역시 사람은 아는만큼 보이고 들리나보다.
"이게 이렇게 좋았었나?"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가끔 보였는데 이제 슬슬 올라오는게 뜸해진게 느껴진다.
첫 구입은 대학 재학시절이었던 2008년 혹은 2009년 쯤이다.
2008~9년경의 페달보드.
Michael Landau에 한창 빠져있을 때였다.
SD9은 Ibanez 블랙라벨. 근데 맥슨께 더 좋았다.
지금의 물론 중고가를 생각하면 갸웃할 사람들이 꽤 있겠지만, 그때 당시 풀톤 등의 부티크 페달과 더불어 물론은 꽤나 고가의 페달이었고 신품은 엄두도 못내고 신품급 중고를 구입해 잘 쓰다가 내가 느꼈던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팔고 다른 딜레이로 갈아탔었다. 이유는 후술.
물론 사운드적 단점은 아니다. 다소 뜬금없는 예상치 못한 단점이다.
알다시피, 현재 물론에서 제작되고 있는 딜레이는 Aquarius Delay 이다.
해외 포럼에서는 아쿠아리우스와 구분하기 위해 이전 버전을 'Butterfly' 라고 부르는것을 확인.
찰떡같은 이름이다.
두 제품간의 사운드 차이는 이론상으로는 동일하다고 하는데 아쿠아리우스를 테스트해 본게 아니라서 둘이 같은지 다른지는 알 수가 없다.
상술했듯이 플라이트 타임을 쓰면서 소리가 꽤나 괜찮았던지라 멀티펑션 페달 말로 모듈레이션+필터(혹은 톤)가 장착된 단일 디지털 딜레이 페달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 분야의 본좌로는 눈치 챘겠지만...
Pete Cornish TES 되시겠다.
피트 옹의 제품답게 가격은 사악하다.
당연히 지금은 생산되고 있지 않기에 하늘높은줄 모를 가격을 자랑 중.
재밌는 사실은 TES는 근본적으로 Boss DD-2 를 피트옹이 입맛에 맞게 개조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해외 포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거의 DD2 본체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수준이다.
DD2도 디지털 딜레이 중에선 빈티지하고 따뜻한 질감으로 유명한 페달인데, 내부에 들어가있는 디지털 칩 때문이라는데 이 얘기까지 하기엔 너무 산으로 갈 것 같다.
여하튼 TES는 너무 비싸고, 대안으로 보통 거론되는 페달이 Providence 의 Delay 80 이다.
Providence 딜레이 변천사.
우측 하단의 Chrono Delay는 현재도 생산되고 있다.
Gilmour 옹도 하나 사용하고 계시는 딜레이 페달이다.
이것도 이제는 가격이 많이 비싸졌더라...
그리고 추가로 대안으로 언급되는 페달이
물론 딜레이다.
국내에서나 인기 없었지 해외에서는 꽤 호평이었다.
정확히는 아쿠아리우스가 아닌 버터플라이가 언급되고 있다.
역시 주류 의견은 아니겠으나 이 대목이 나의 관심을 끌었고 다시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딜레이의 특징이라면 출시당시 흔치 않았던 듀얼 딜레이를 지원했었던 점이다.
나도 출시 이후에 그 점 때문에 구입했었다.
근데 라인믹서나 그밖에 다른 식으로 딜레이 두개를 병렬로 연결했을때와 동일하진 않고 두 리핏의 간격이 그냥 일정하게 나오는 식으로 구현되어 있다.
대략 딜레이 A,B가 있다면
ex) A=300ms, B=450ms
A : 0 0 0 0 0 0 0 0 0 0
B : 0 0 0 0 0 0 0 0
이런 느낌이 아닌
A : 0 0 0 0 0 0 0 0
B : 0 0 0 0 0 0 0 0
이런 느낌이다. 고로 완전 생동감있는 느낌까지는 아니다.
이것까지는 그럴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다시 구입후 테스트해보고 느낀건데 아마 과거에 이거때문에 팔았던게 확실하다.
모드 상관없이 Delay Time 노브를 돌리면
딜레이가 끊어진다...
이게 그냥 평소에 딜레이를 노브 건드리지 않고 쓰는사람들은 상관 없는데 노브를 실시간으로 조작하면서 오실레이션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식의 플레이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게 아마 듀얼 딜레이나 기타 탭템포 등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 같은 느낌인데 개인적으로 그때 당시에는 아주 치명적 단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용도로 쓰려고 구입한 것도 아니고 상관없다. 소리만 좋으면 되었다 ㅎㅎㅎ
짧은 시간 사용했지만 플라이트 타임은 나에게 정말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딜레이 페달이다. 힘있고 고급진 딜레이 소리. 충실한 필터와 모듈레이션까지.
역시 단점이라면 과거 2290 처럼 노브가 아닌 버튼으로 파라메터를 조작해야 하는지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 조작이 어려운건 아닌데 좀 많이 귀찮다.
다시 구입 후 테스트해보니 물론 딜레이의
모듈레이션과 필터 부분이 정말 음악적이라고 느낀다.
그땐 왜 몰랐을까...
특히 필터 부분이 인상적인데 단순히 Hi Cut 느낌이 아니라 Bandpass 로 되어있어 저음도 적당히 자를 수 있고 아날로그 틱한 느낌을 주기에 더 용이한 느낌이다.
보통 이런 노브(모듈레이션, 필터)가 달려있는 이유가 아날로그 테잎 에코 같은 뉘앙스를 시뮬레이션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말 그대로 Simulation 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테잎에코와 동일하지 않다는 말이다.
다만 그 어설프게(?) 흉내낸 듯한 소리는 그것대로 매력이 있는 사운드이다.
유니바이브의 기원이 레슬리 스피커를 시뮬레이션 하려고 만들어진 물건인데 레슬리와 비슷하진 않았지만 대신 그것만의 확고한 뉘앙스가 Vibe 라는 캐릭터로 자리잡은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딜레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연히 차가운 소리만 나는 딜레이는 나도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유니바이브의 그것처럼, 아날로그 테잎 에코를 흉내내려다 그것과는 또 다른 나름의 매력적인 사운드를 내주는 악기 로 접근 해야한다.
디지털 딜레이는 그런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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