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뜬금없는 지름은
아마도 이 페달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Free The Tone 에서 출시된 Flight Time 이다.
구입하게 된 계기가 좀 뜬금없긴 한데, 처음 새틀라이트 보드를 만들 적에는 리플리케이터와 골든 리버브 딱 두개였고 많은 기타리스트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페달보드 공간이 남는지라 '하나정도 더 넣을 수 있겠는데?' 에서 출발했다 ㅎㅎㅎㅎ
새틀라이트 보드를 구상하면서 리플리케이터와는 또 다른 괜찮은 질감의 디지털 딜레이 하나정도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서 평소와 같이 묻지마 뮬 검색을 하다가 불현듯 이 페달이 보였고 중고가도 아주 훌륭해서 '이정도면 일단 사고 별로면 팔아야겠다.' 마인드로 구입했다.
첫 출시는 2014년? 인가로 기억한다. 나름 유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기억이 있었고 나도 처음 딱 보면서 느낀건 외관에서 풍기는 바로 그것 때문에...
TC Electronic 2290 Dynamic Digital Delay
바로 이것. 불세출의 명기 TC 2290이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다.
프리더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특정 제품을 모티브로 삼지 않았다고 언급) 누가봐도 비행기 조종석 계기판 같은 디자인도 유사하고 키패드만 없지 따로 노브 없이 버튼으로 구성된 컨트롤 조작부도 여러모로 2290과 비슷하다.
분명 여기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거라는 합리적 추론을 하게 만든다.
근데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자료 수집을 하던 도중 발견한게 있는데...
??
2019년에 TC Electronic에서 2290을 페달 형태로 출시하는것에 대한 일종의 여론조사를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 이미지는 TC에서 공개한 목업(Mockup) 이미지다.
만약 출시된다면(물론 내가 구입할 일은 없겠지만) 꽤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 같기도 하다. 보다보니 Korg의 SDD-3000 Pedal 을 보고 어떤 자극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뭔가 루트가 비슷하다.
오리지널이 랙형으로 존재하고 후에 페달형으로 출시되었다는 점에서 나름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가 잠시 딴데로 샜는데, FT-1Y로 처음 출시해서 2017년에 FT-2Y로 버전업이 되었다.
둘의 차이는 전압과 음질 그리고 기타 소소한 디벨롭 이라는데 전버전을 써보질 않아서...
전압 부분은 전버전은 12V 전용이었고 이번에 구입한 FT-2Y는 9V-12V 겸용인데 12V가 좀더 소리가 좋다고 해서 그렇게 쓰고 있는 중이다.
두가지 전압에서 테스트 해봤을때 역시 9V 대비 12V가 좀더 힘있는 느낌이다.
신품가가 공식 수입처인 톤퀘스트 기준으로 539,000원인데 중고가가 생각보다 많이 흘러내려있다. 원래 부띠크 페달 특히 디지털 기반의 악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폭이 큰 편이긴 하지만 출시한지 5년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꽤나 가격이 내려간 모양새다.
리플리케이터 때도 언급했지만 내 생각엔 플라이트 타임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일단 멀티펑션 딜레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 멀티펑션 딜레이에 새 패러다임을 쓴 제품이 있었으니...
바로 이것. 사실 좀 용도가 다르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가격대 면에서 타임라인 대비 플라이트 타임이 유저들에게 큰 매력이 없었을 거라 예상해본다. 이가격에 나름 평타는 치는 다양한 딜레이를 타임라인에선 쓸 수 있는데 플라이트 타임은 단일 딜레이니 말이다. 일단 가성비 면에서 상대가 안된다.또한 스테레오 미지원. 플라이트 타임은 Mono In/Out 이다. 이후 프리더톤의 다른 딜레이 제품인 Future Factory는 스테레오 아웃을 지원하긴 하는데 애당초 성향이 다른 제품인지라.
그렇지만 이 Stereo Rig 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봐야 할게, 레코딩 환경이라면 스테레오 세팅이 유효할 수 있는데 문제는 라이브/투어 상황에서다.
스튜디오/음악 청취 환경은 비교적 센터 정위가 잘 잡힌 상태이기 때문에 스테레오 이미지가 잘 들리는데 반해 라이브 환경에선 관객이 항상 정위가 잘 잡힌 센터 존에 위치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왼쪽에 있는 관객은 왼쪽 사운드만 크게, 오른쪽 관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결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하스 효과(Haas Effect)를 이용하면 비교적 좌,우에 있는 관객들도 어느정도 스테레오 이미지를 느낄 수 있기는 하지만 결국 모노 사운드에 스테레오처럼 들리게 하는거라 완벽하진 않다.
또한 이 방법은 현장 오퍼레이터와 사전 협의와 협조가 이뤄저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데 국내 연주환경에서는 쉽지 않은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이유로 스테레오 세팅을 선호하지 않는다. 원래 모노를 좋아하기도 하고 설령 세팅을 해도 라이브 환경에서 제대로 구현하기에 애로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상술한 두 가지 이유로 타임라인은 지금까지 가격방어가 견고히 되고 있는데
플라이트 타임은 중고 가격이 흘러내리지 않았나 하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위에 언급한 이유들에 모두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한때 이븐타이트 등의 멀티펑션 페달들을 쓰기도 했었는데 결국엔 제대로 된 단일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페달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디지털 악기들이 정해진 DSP 리소스를 쓰는거면 단일 기능에 몰빵해놓은 제품이 소리도 좋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한거 같고.
오히려 스트라이먼 페달들의 특유의 바이패스와 얇은 사운드 때문에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멀티펑션 페달을 원하는것도 아니고 스테레오도 필요없고 심지어 가격도 흘러내려 저럼하다?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후 리플리케이터를 내리고 Jam Pedal Delay Llama Xtreme 을 구입후 현재의 라인업을 완성하였다.
새틀라이트 보드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딜레이라마와 플라이트 타임은 사운드 성향 자체가 다르다.
딜레이라마가 '따뜻함, 포근함, 오실레이션, 사이키델릭한 휘몰아침' 같은 느낌이라면 플라이트 타임은 '깨끗함, 선명함, 단단함, 풍부한 공간감' 같은 느낌이 있고 둘을 같이 썼을때 그 풍성함이 참 매력적이다.
기본적으로 앨범이나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2290 같은 뉘앙스(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가 기본으로 있다. 랙 딜레이에서 느낄 수 있는 선명하고 힘있는 딜레이 사운드이다.
디지털 딜레이의 기본 컨트롤에 하이패스, 로우패스로 이루어진 필터와 모듈레이션이 포함되어 있고 이 부분을 잘 만지면 퍼커시브한 딜레이 사운드에서 자연스럽고 스무스한 딜레이 사운드까지 연출이 가능하다.
로우패스 쪽을 최대로 낮추면 약간 아날로그 딜레이처럼 부드러운 딜레이 사운드도 연출 가능하긴 한데 솔직히 자연스럽진 않지만 필요한 곳에선 좋을 것 같다.
탭템포에 적용하는 Subdivision 기능과 특이하게 Offset 기능이 있는데 탭을 너무 정확하게 밟으면 약간 딜레이 사운드가 재미없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밟은 탭보다 약간 빠르게 혹은 느리게 딜레이 타임을 설정하는 기능이다. 이거 좀 많이 유용하다 생각한다.
딱 The Edge의 이런 사운드는 그냥 나와준다.
이런 수식어 별로 안좋아하지만, 랙 딜레이의 사운드를 페달에 꾸겨넣었다(?) 라는 말이 어울린다.
멀티펑션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적어도 타임라인보다는 훨씬 사운드 퀄리티가 좋다.
근데 사실 이런 사운드때문에 구입한건 아니고 진짜 이유는...
David Gilmour 2015 Tour Rig
데이빗 길모어가 쓴다고 그래서 ㅎㅎㅎㅎㅎ 길모어 사운드를 동경하기도 하고 페달 덕질만 50년 넘게 해오신 양반이 쓰시는덴 다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고 직접 사용해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아날로그 딜레이와는 또 다른 자연스런 공간감과 두께감 선명함을 들려주었고 소위 말하는 잘 묻는(?) 약간 있는듯 없는듯 묻히는 딜레이로도 압도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가끔 이런 자연스런 딜레이 사운드도 나름 좀 그립고 했었는데 그 부분을 꽤나 잘 채워주는 느낌이다.
그리고 의외였던건, 슬랩백 사운드가 훌륭하다. 딜레이라마의 아날로그 슬랩백도 따뜻하고 매력있는데 플라이트 타임의 슬랩백은 그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힘있고 꽉찬 뉘앙스라 좀 놀랐다.
그리고 비슷하진 않지만 의외로 테잎에코 같은 하이파이한 뉘앙스도 연출할 수 있다. 플라이트 타임이 잘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이부분인데, 자칫 차갑다고 느낄 수 있는 딜레이인데 리핏 자체가 힘이 있어서 그런지 단단하다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테잎에코는 마냥 로파이하고 먹먹할거라 생각하는데,
의외로 테잎에코는 상당히 하이파이한 악기다.
당장 유튜브에 에코플렉스 영상만 찾아봐도 답 나온다.
하이파이, 특유의 같은곳만 반복 재생하는거 같은 리핏 뉘앙스가 바로 테잎에코의 매력포인트인 셈이다.
오히려 보통 생각하는 약간 먹먹하면서 꽁한듯한 리핏은 아날로그 딜레이의 특성에 가깝다. 테잎에코와 디지털 딜레이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리핏 뉘앙스 인것 같다. 디지털의 선명함과 아날로그의 따뜻함이 공존하는게 테잎 에코인 셈이다.
역시 대단한 악기다. 진짜 좀만 부지런하고 쓰기 좀만 쉬웠으면 리플리케이터를 가져갔을 텐데...
상술한 이유로 길모어는 다양한 디지털 딜레이를 사용하는데 플라이트 타임 2대, 크로노딜레이와 길모어의 오랜친구 MXR DDL II 가 그것이다. 이걸로 Time 같은 곡의 인트로 부분을 각기 다른 타임의 딜레이를 레이어링해서 Binson Echorec 의 스웰 모드를 재현하는거라 생각한다.
의외로 아날로그 딜레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하이파이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길모어의 딜레이 사운드는 예나 지금이나 꽤나 하이파이한 편이었다.
외관만 보면 조작이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데 보기에만 그래보일 뿐 상당히 쉽다. 다만 노브가 아니고 버튼으로 파라메터를 조작하는거라 좀 귀찮다 정도?
확실히 요즘 나오는 디지털 기반 공간계들의 장점이라 한다면 내장 아날로그 믹서들이 기본적으로 있다는 점일 것이다. 드라이 시그널은 그대로 보존되어 인풋에서 아웃풋으로 나가고 여기에 100% 딜레이 웻사운드를 내장 믹서에서 블랜드해 최종 출력하는 형태라서 이전 디지털 딜레이들 대비 확실히 음질면에서 장점을 가지는데 플라이트 타임은 특히 이부분에서 강점을 보인다.
프리더톤에서 이야기하는 HTS Circuit 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기술적인 이야기는 잘 모르겠고 일단 바이패스 사운드 퀄리티가 상당히 좋다. 위상 변화라거나 톤변화도 아예 못느낄 정도고 시그널 로스가 내귀에는 아예 없는 수준으로 느껴진다. 노이즈는 당연히 제로.
켜고 끌때 위화감이 아예 없다. 파핑은 당연히 없고 티가 안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다.
가장 걱정했던 딜레이를 걸었을때 원소스나 최종 결과물에 왜곡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점이었는데 이부분이 정말 완벽하다고 표현해야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드라이 시그널은 거의 99% 보존된다고 봐야할 것 같고 딜레이 사운드만 살포시 입혀놓는 느낌이다. 별도의 라인믹서를 쓰지 않음에도 분리도가 너무 좋고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간다.
프리더톤에서 저 HTS Circuit을 본인들의 대단한 업적이라고 소개하곤 하는데
처음에 콧방귀 끼었었다가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정석적인 단일 모드의 디지털 딜레이지만 사운드 퀄리티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페달형 디지털 딜레이중엔 당당히 상위권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프리셋 뱅크 있고 필터 모듈 있는 엄청 좋은 DD3 같은?
비교대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귀엔 타임라인보단 한 3배 정도 좋게 들린다.
나의 취향과 같이 멀티펑션 싫고 스테레오 필요없고 사운드 퀄리티 하나만 몰빵해놓은 디지털 딜레이를 찾는다면 이게 그 해답이 되어줄 거라 생각한다.
대신 신품가는 조금 망설이게 되고, 착한 가격의 중고로 구하는걸로 ㅎㅎㅎ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