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한낮에는 덥다고 느낄 정도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게르마늄 퍼즈들의 소리가 한층 더 좋아졌다. 아무래도 온도에 예민한 특성상 작업실 실내가 보다 따뜻해져서일 테다. 괜히 기분이 좋다 ㅎㅎ
이렇게 뭔가 아날로그와 빈티지로 대변되는 것들은 요즘 기준에서 보면 기기 자체도 예민하고 사용하기가 상당히 귀찮고 무언가 불편한 구석이 있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사용하는 이유는 오로지 사운드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테잎 에코도 그중 하나다. 진짜 카세트 테잎에 녹음한걸 재생하는 방식으로 구동되는 딜레이. 일단 진짜 테잎이 있어야 하는 그야말로 불편함의 끝 ㅎㅎㅎ
구입 자체는 작년 이맘때쯤 한것 같다. 사용한지 현재 기준 대략 1년 좀 안되었다.
이걸 구입하기 직전에 Strymon의 Volante를 사용했었다. 관련 포스팅도 있다.
디지털임을 감안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스트라이먼에 몇 안되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유저가 전반적으로 테잎 에코에 바라는 기능들을 충실하게 구현해놨고 뉘앙스라던가 사운드 퀄리티도 꽤나 괜찮았다. 시원한 구석도 있고 나름 에이징된 소리 뉘앙스와 인풋레벨에 과입력을 걸었을때 두텁게 나오는 특유의 세추레이션까지.
역시 항상 아쉬웠던건 특유의 바이패스 뉘앙스. 모든 스트라이먼 페달이 공유하는 나에게는 문제점이라 느껴지는 부분인데 희한하게 바이패스 상태에서도 묘하게 소리가 얇아진다. 정확히는 저역대와 중저역대가 좀 짤려나가는 느낌? 당연히 원소스가 이러니 에코 사운드 자체가 뭔가 두터우려고 애쓰는 얇은 느낌이긴 했다.
스트라이먼이 진짜 이것만 어떻게 해결하면 희대의 명작 완전체가 태어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마 그런 일은 없을거 같기도 하다.
지나고 나서 느낀 사실이지만 확실히 리플리케이터 대비 볼란테 사운드가 얇은게 맞았다. 기본적인 스트라이먼의 지향점 차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근본적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이라고 보는게 맞는 것 같다. 질감 뉘앙스 면에서도 볼란테는 정말 그냥 흉내내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리플리케이터 구입은 사실 반 충동구매였다. 사실 출시 초기부터 학교음악에서 판매했는데 그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긴 했지만 출시당시 가격은 100만원 초중반? 대였던것 같다.
그러다 가격이 흐르다 못해 코인 폭락하듯 흘러내려 68만원 가량 되었을때 한번 더 고민했는데 그때 볼란테를 신품 구입했었다.
결국 눈에 아른거리는건 써봐야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성격도 한몫 했고 기타리스트 이정훈님이 사용 후 호평하는걸 보고 구입하게 되었다.
https://blog.naver.com/grey0423/222306600602 이정훈님의 리플리케이터 사용기
리플리케이터가 이렇게까지 가격이 흘러내린 데는 누가봐도 다 납득할만한 명확한 이유가 있다.
일단 크다. 물론 에코플렉스 같은 그시절 테잎에코 보다는 작지만 사진상으로 봐도 현재 8040 사이즈 보드인데 전혀 보드 친화적인 사이즈가 아니다.
그리고 무겁다. 전용 아답터를 사용한다(DC24V 300mA). 부두랩의 12V 2구를 더블링 해서 사용은 가능하지만 일단 빈티지 메모리맨 급의 짜증나는 전원을 요구한다.
그리고 출시당시 너무 고가였다. 나도 가격이 이렇게나 떨어지고 나서야 구입을 고려할 정도였으니 출시 초기에는 더했을 것이다. 그당시 출시가가 중고로 Fulltone의 테잎에코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었으니. 사람들 하는말이 무슨 금칠이라도 했냐는 비아냥도 많긴 했었다.
해외에서도 대우가 별반 다르진 않았었던 것 같다. 아직 재고가 남아있는 곳 기준으로 학교음악 가격과 얼추 비슷하다. 현시점 고환율에서는 신품기준 학교음악이 무조건 싸다.
여담으로, 티렉스가 몇년전에 한번 파산했다 회생했다는 카더라가 있던데... 아마 이거 출시에 사활을 걸었는데 사람들에게 외면받았던게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현재는 이 버전은 유로랙 모듈 제외 단종된것 같고, Replicator D'Luxe라고 더 작아지고 DC9V를 사용할 수 있게 새로운 버전을 판매하고 있는 것 같다.
리플리케이터는 1개의 Record Head와 2개의 Playback Head로 구성되어 있다. 플레이백 헤드가 3개였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단가상승 크기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2개의 플레이백 헤드가 각각 레벨이 다르다. 1번과 2번이 1:2 정도의 레벨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일단 단점부터 적어본다.
사용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어찌보면 가장 큰 단점.
나도 처음에 좀 해멨었던 게 보통의 딜레이(아날로그 디지털 막론하고) 대비 압도적으로 큰 헤드룸 덕에 딜레이레벨을 설정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작으면 작게 크면 크게 막힘없이 다 내주는 느낌이라 적응하는데 꽤 시일이 걸렸다. 이건 장점도 되는데, 스튜디오에서도 인서트용으로 무리없이 사용 가능하고 그만큼 사운드가 거대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타임이 길어질수록 테잎 재생 속도가 느려지는지라 피드백에 의한 오실레이션이 더 쉽게 일어나서 컨트롤이 좀 까다롭다. 피드백 쪽에 익스프레션 페달이 거의 반 필수 느낌이다. 1번 헤드는 그래도 좀 덜한데 2번 헤드가 좀 부담스럽게 크다. 스윗스팟 찾기가 역대급으로 까다로운 페달이었다.
초심자는 더러워서 못써먹겠네 하기 딱 좋을 정도의 엄청난 난이도가 있다.
페달을 켰을때 특유의 착색이 있다. 마스터볼륨이 드라이에도 적용된다. 이부분도 호불호의 영역으로 갈릴것 같은데 한층 두터워지는 음색이 나에게는 상당히 마음에 든다.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프리앰프 노이즈가 있으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경우에 따라선 꽤 크다고 느껴져 거슬릴 수 있다.
주기적으로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 정확히는 테잎 텐션(?) 칼리브레이션과 헤드와 핀치휠, 롤러 등을 알콜로 닦아줘야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음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 가끔 생각날때 해주고 있는데 솔직히 귀찮다.
테이프 두께가 우리가 흔히 보던 카세트 테이프 두께다. 에코플렉스나 스페이스 에코의 테잎 대비 절반정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운드가 하이파이하게 리핏 되는 느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테잎 칼리브레이션을 잘 해도 약간의 플러터가 끼어 있다. 이것도 사실 호불호의 영역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소리가 압도적으로 좋다.
스윗스팟 찾기가 까다로워서 그렇지 제대로 세팅하면 진짜 이만한 페달이 또 있나 싶을 정도다. 이거 구입한 이후로 다른 디지털 딜레이들은 쳐다도 안보게 됬다.
한없이 따뜻하고 풍부한 테잎 세추레이션에 스피드와 피드백은 개별 익스프레션을 지원하고 탭템포도 지원한다. 모듈레이션도 애매하지 않고 확실하게 먹어준다. 진짜 디지털에서 느낄수 없는 공간감을 재현해준다.
피드백을 올려 오실레이션을 일으키면 리얼 테잎에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에코플렉스나 스페이크 에코와는 좀 결이 다른 사운드이다. 그나마 근접하다면 스페이스 에코 쪽인데, 사실 이 둘중 하나를 생각하고 구입하면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다. 티렉스만의 테잎에코 사운드라고 생각하고 플레이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많은 뮤지션들이 디지털 장비들이 나오고 약간의 사운드 퀄리티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옥같은 유지 보수 행위와 떨어지는 일관성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부분은 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현대 명기로 칭송받는 빈티지 아날로그 악기들이 당시 뮤지션들에게는 불량률 높고 편차 큰 그저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적이 심심치않게 있었다.
디지털이 사운드 퀄리티를 좀 포기하고 압도적인 편의성을 가져다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같긴 하다.
예전에 길모어가 에코렉 쓸 당시에 주기적으로 기름칠 해줘가며 쓰는것에 학을 떼고 디지털로 갈아탔다는 일화가 있다. 비슷한 이유로 내 주변엔 요즘 다시 유행하는 LP를 극혐하고 CD와 스트리밍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걸 생각해보면 이런 류의 제품은 나름(?) 부지런해야 한다.
요즘 DS-1 내부라고 한다. SMD(표면 실장 방식)로 제작되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니지 싶다.
기술이 날로 진보하여 새롭고 혁신적인 악기가 쏟아져 나오는 악기시장에 (다른 악기들도 그렇지만)유독 기타시장이 빈티지에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기술력=사운드 라는 등식이 전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형화, 기계적 전기적 효율 품질 면에서는 월등히 좋아지지만 이건 사운드 퀄리티와는 일절 상관없는 가전제품과 전자기기에나 해당하는 이야기고 같은 방식으로 기술발전의 수혜를 입은 악기(특히 기타)시장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운드의 질적 하락을 가져온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역시나 제일 중요한건 아날로그 디지털 상관없이 좋은 사운드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그걸 구현하기 위한 플레이어의 확고한 철학(?) 이지 않을까 싶다.
+22.7.22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베이 리버브 등에서 검색해봤는데 단종된지 좀 되어서 그런가 벌써 프리미엄 붙은 가격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벌써 가격 상승 드릉드릉 중이다.
최소 800불대 에서 가격 형성이 되고 있는데 현재의 미친 환율에 빗대어 보면 스쿨뮤직 680,000원이 전세계 최저가라고 봐도 무방한것 같다. 뮬 중고도 전세계 최저가다.
염두해 두고 있는 분들은 지금이 적기인 것 같다.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