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5일 금요일

버퍼의 배신(?) Feat. 퍼즈와 커패시턴스(Fuzz & Capacitance)

제목이 좀 어그로 같긴 한데... 이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이번 포스팅 제목은 이렇게 하기로.
우선 시작에 앞서,

해당 포스팅은 버퍼를 까거나,
버퍼 무용론을 주장하는게 아님을 명확히 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제조사별 버퍼의 음색 등도 이 포스팅에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순수히 버퍼의 기능(Hi-Z에서 Lo-Z)에 관련된 내용만을 다룰 예정이다.

일단 버퍼에 대해 이제는 대부분 다 알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JHS 공홈에서 알기쉽게 설명한 여기를 참고.

다양한 Stand Alone 버퍼들.

결국 버퍼를 쓰는 이유는 케이블의 커패시턴스(Capacitance)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함이다. 커패시턴스 링크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케이블 자체의 음색이 있기도 하거니와 케이블이 길어질수록 일종의 캐패시터(Capacitor, 축전지) 역할을 하는데 이게 고음부터 짤려나간다. 흔히 톤로스 라고 이야기하는 그것이다. 정확히는 고음의 롤오프 현상을 이야기한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버퍼를 사용한다. 제품별 고유의 음색은 앞서 밝혔듯 논외로 하고 이론상 버퍼를 거치면 그뒤에 시그널이 5미터건 50미터건 동일하게 기타를 앰프에 바로 연결한 것과 비슷하게 고음역대를 유지할 수 있다.

빈티지 서킷의 퍼즈박스 앞에 버퍼가 오면 소리가 과입력 걸린것처럼 가늘고 이상하게 변한다는 것도 이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다. 정확히는 낮은 임피던스의 시그널이 퍼즈의 트랜지스터 들어가면서 과증폭이 이루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번에 다룰 내용은 정확히는 퍼즈 뒤에 위치하는 버퍼에 관해서다."

해당 포스팅을 작성하는 이유는 그동안 내가 버퍼를 사용해오던 방식에 있어 전반적으로 재검토를 하게된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우연한 계기로 알게된 내용이다.

여느때와 동일하게 필스타의 필벤더(Tonebender Mk1 Clone)을 가지고 연습을 할 때였다. 근데 이날따라 고역대에 뭔가 듣기싫은 비음들이 섞이는 소리가 나는 거였다.
'아... 내가 알던 소리가 아닌데... 온도 때문인가? 아님 그냥 원래 불안정한 설계의 회로니 그런가?' 하고 그동안은 넘어갔었는데 순간 머릿속에 하나 스치는 게 있었다.

"설마, 뒷단에 버퍼 때문에?"

습관처럼 톤로스를 방지하고자 뒷단에 물론 디스토션(버퍼)를 놓고 써왔었는데 이걸 빼고 버퍼없이 그냥 5미터짜리 케이블을 앰프에 연결하고 소리를 들어봤다.
기존에는 기타 - 5m케이블 - 퍼즈 - 버퍼 - 5m케이블 - 앰프 였다면 이걸 기타 - 5m케이블 - 퍼즈 - 5m케이블 - 앰프 로 바꿔본 것이다.
전자는 대부분 페달보드를 연결해서 쓸때와 비슷한 상황일 테고, 후자는 그냥 퍼즈 한두개만 가지고 쓸때의 상황일 것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듣기싫은 하이 대역이 싹 정리되고 풍부한 톤벤더 본연의사운드가 나와주는 것이었다.
옛날 형님들의 앨범과 라이브에서 듣던 그 소리.

정말 퍼즈 뒤에 케이블 커패시턴스 때문이라고? 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퍼즈 다음에 최대한 짦은 케이블(20cm)을 이용해 앰프에 연결 후 소리를 들어봤다.
당연하게도, 버퍼를 연결했을때와 동일하게 듣기싫은 고역대가 다시 살아났다. 새삼 물론 버퍼는 정말 버퍼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톤로스(고역대 롤오프)를 방지하고자 사용했던 버퍼가 아이러니하게도 퍼즈 사운드를 하이파이(?) 하게 만들어서 불필요한 고역과 초고역대까지 들리게 만들었던 거다.

그야말로, 나는 맹신했던 버퍼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이번 포스팅 제목의 기원이다.
사실, 버퍼의 잘못은 아니다. 버퍼는 오히려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옛날 형님들의 퍼즈 사운드는
결국 퍼즈와 그 뒤에 케이블로 인한 '톤깎임' 의 조합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옛날 형님들은 그당시 버퍼라는건 있지도 않았고 '커패시턴스가 뭐임?' 하고 코일 케이블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그냥 썼을게 뻔하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케이블이 하도 길어져서 생기는 그 먹먹함이 고민이긴 했었나보다. 그래서 어떻게든 극복해보자 해서 나왔던 고민의 흔적이 바로 Treble Booster 다.

Dallas Arbiter 'Rangemaster' Treble Booster

이당시 트레블부스트는 '앗 고음이 깎이네? 그럼 뒤에서 고음을 부스트해주자!' 해서 나온 물건이었는데, 알다시피 손실된 대역만 딱 보상되는게 아니라 뭔가 특유의 중고역대의 꽁깃함을 가진 특유의 뉘앙스를 내주는 물건이었고 본래의 목적과는 약간 다른 별개의 악기로써 널리 사랑받게 된다.

이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케이블로 인해 어느정도 깎여나간 고음으로 대부분 연주했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사전적 의미의 버퍼를 최초로 고안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에 BOSS 에서라고 알고 있다.

사실 고음이 깎인 소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앰프마다 다르겠지만 좀 과하다 느껴질 수 있는 고역대를 어느정도 스윗하게(?)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이게 앰프 EQ에서 트레블을 줄인다고 해도 비슷해지지 않는 특유의 뉘앙스가 있다. 깎이는 레인지와 EQ 레인지가 미묘하게 다르다.

다들 한번씩 그런 경험 있지 않을까?
톤깎임 심한 페달보드를 쓸적에
아무리 앰프에서 트레블을 올려도
기타를 바로 연결했을때와는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랐던 것 말이다.
버퍼가 보상해주는 고음과,
앰프 트레블에서 올라가는 고역대가
대부분 약간씩 다르다.

'그럼 그냥 기타에서 퍼즈까지의 케이블을 더 길게 쓰면 되는거 아님?' 할 수도 있는데 이건 또 다르다. 이건 기타에서 톤노브를 약간 줄인것과 비슷한 상황인데, 기타와 퍼즈간에 반응 자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고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퍼즈에서 퍼즈톤이 생성되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변화다.
만들어진 퍼즈 사운드 자체의 고역대를 약간 쳐내주는 것과 비슷하다. Pre EQ와 Post EQ의 차이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당연하게도 둘의 사운드 변화는 약간 다르다.

이 내용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봤더니 That Pedal Show 에서 관련 내용을 이미 다뤘었다. 해외 포럼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았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없는게 없고 안해본것 없는 영국 신사 양반들 ㅎㅎㅎ
아래는 관련 내용 영상들.

4:48 부터 관련 내용이 나온다.
53:28 부터 관련 내용을 다룬다.

Shnobel Tone 에서는 아예 이런 버퍼도 나왔다. 긴 케이블이 있는 것처럼 0ft, 10ft, 20ft 케이블 커패시턴스를 버퍼 앞에 줄 수 있는 제품이다. 대략 3m, 6m로 생각하면 편할듯.
(이양반 Pete Cornish 페달 리뷰 영상으로 유명한데 그닥 참고는 안되는듯... 페달 사업도 하는지는 처음 알았다.)

아래는 제품 소개 영상. 기본적으로 위와 동일한 제품.
내가 여기서 언급한 내용과 같은 고민을 가지고 나온 제품 같다.

그냥 저 제품을 사볼까 하다가 영샹의 제품은 굳이? 하는 생각이 있었고 위처럼 깔끔하게 커패시턴스 토글이 달린 버퍼에 건전지 사용이 가능했으면(쓸데없이 배터리 잡아먹는 LED는 빼고) 좋겠다 싶어서 민경민(Maketune) 님에게 제작 여부를 질문드렸고, 가능하다는 답변이 와서 현재 제작을 부탁해놓은 상태다.
제품을 수령하면 추가로 의견을 남기는 것으로.

또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그냥 퍼즈와 버퍼 사이의 케이블을 긴 걸 쓰면 되지 않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물론 맞다.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
그렇지만... 귀찮으니깐 ㅎㅎㅎㅎㅎㅎㅎ 세팅도 편하고 짧은 패치케이블 연결하고 토글로 바꿀 수 있으면 좋으니깐 ㅎㅎㅎㅎㅎ

퍼즈를 사용한다면 한번쯤은 고민해볼 만한 이슈인것 같다. 퍼즈 뒤에 짧은 패치케이블로 버퍼를 연결한다면 결국 퍼즈에서 패치케이블로 앰프에 연결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옛날 형들은 이렇게 사용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퍼즈 뒤에 깎여나가는 고음으로 만들어진 소리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TPSDanMick 도 영상에서 비슷한 말을 한다.

"톤깎임도 톤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커패시턴스와 버퍼, 톤깎임 이야기를 하다보니 갑자기 이 제품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국내외 막론하고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아 근데 웃을일은 아닌게 이거 소리 바뀐다. 안에 2차대전 시절 빈티지 Western Electric Wire 딱 두가닥 있다.
예전 홍대 스톰박스에서 테스트했을때 '이게 설마 바뀌겠어?' 했는데 달라지는거 듣고 동공지진 왔었다. 고역대가 좀더 스파클하게 다듬어진다 해야할까?
남들이 보면 돈 쓸데가 그렇게 없냐 코웃음 칠테지만 저거 구할 수 있으면 하나 구하고 싶을 정도다. 그정도로 나름 극적인 변화가 있다.

케이블 고유의 음색과 커패시턴스가 미묘하게 작용한 사례라고 나는 보게 되었다.
혼다 아저씨는 이 모든걸 알고 만들었던 것인가...

아래 사진은 혼다 아저씨가 팔던 잭에 끼우는 와셔다. 순동 와셔인데 이것도 소리 변화가 있다고 한다.
근데 이건 좀 나조차도 선 넘었다고 생각한다 ㅎㅎㅎㅎ 혼다 아저씨 미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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