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거창하지만 단순하고 명확하다.
"소리가 좋아야 한다."
하지만 소리라는게 워낙 주관적인 영역이라 이 단순명료한 사실을 알면서도 참 고르기가 어렵다.
거기다, 수도 없이 많은 브랜드에서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게 현재의 악기 시장이고 SNS와 유튜브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좋은 악기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기도 하다.
모든 포스팅이 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다분히 나의 주관적인 좋은 악기의 기준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글이 좀 길어질 것 같아 우선 결론부터 밝히자면,
1. 근본이 있어야 한다.
(오리지널리티, 빌더의 역량 등)
2. 감성이 있어야 하고, 그게 나랑 맞아야 한다.
(디자인, 개발의도, 철학 등)
3. 빌드 퀄리티가 좋아야 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기준들도 있지만 저 3가지를 제일 중요하게 따져보는 편이다.
뭐 소리 좋고 취향에 맞아야 하고 이런건 당연한 이야기기 때문에 여기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단, 빈티지/오리지널 제품들은 해당사항이 없다.
오리지널은 소리가 취향에 안맞을 지언정(그마저도 쉽지 않다 ㅎㅎ) 말 그대로 오리지널이고 그 자체가 절대기준이고 절대 근본이 있는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거의 절대적 불가침의 영역이다.
빈티지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후화되어서 고장날까 사용하기 불안한 것과 유지보수가 힘들다는 단점은 차지하고, 소리 하나가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들은 퍼즈페이스, 톤벤더 빅머프 등의 빈티지 퍼즈박스와 MXR 디스토션+, 초기 랫이나 오리지널 TS808과 클론 센타우르 같은 기준이 되는 페달들이다.
위에 기준들은 빈티지/오리지널이 아닌 현재 출시되고 있거나 단종된지 오래되지 않은 제품들 기준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에 나열한 내용들은 지극히 나의 기준이다. 저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후진 페달이란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남들 다 좋다는 제품들도 나에겐 별로인 적도 많았고 남들이 별로라는 제품들이 나에겐 아주 괜찮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저 3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브랜드와 제품을 찾기가 어렵다. 사실 소리좋고 취향에 맞으면 장땡이긴 한데 그건 빈티지 오리지널들이나 그런거고, 저 기준을 충족 못하는 페달들 치고 소리 좋은 페달들 보질 못했다.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대부분의 이펙터 브랜드와 제품들 중 80% 이상은 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저 기준을 전부 충족하는 브랜드는 Macari's Solasound, Pete Cornish, Roger Mayer 정도인것 같다. 세 브랜드 다 영국 브랜드인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 브랜드들이야 말로 구입하면 실패하지 않는, 소리 좋고 취향에 맞고 근본은 말할것도 없고 감성있고 퀄리티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세 브랜드는 직접 사용해보고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제품들도 있는데 빈티지 오리지널 제외 하고 모든 페달 브랜드들이 이들의 근본, 감성, 빌드 퀄리티를 롤모델로 삼아야 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사실 피트코니쉬는 근본이 되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브랜드는 아니긴 하다. P-1/P-2가 빅머프의 개량형이고 SS-2는 디스토션+의 피트코니쉬 버전인데 단순히 모디파이 했다고 하기에는 꽤나 다른 사운드를 가지고 있고 탱크같은 내구성과 넘사벽의 빌드 퀄리티를 보여주기 때문에 당당히 저 기준에 들어간다 생각한다.
결국, 감성이다.
세 브랜드의 철학은 확실하다. 마카리스는 범접 불가능한 오리지널 솔라사운드/컬러사운드라는 극강의 정통성을 자랑하고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페달을 만드는걸 모토로 한다.
피트코니쉬는 무결점의 시그널 패스, 혹독한 투어링 환경을 견디는 극한의 내구성, 로저메이어는 본인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사운드를 특유의 출중한 엔지니어링 실력을 기반으로 고유의 회로와 설계로 이를 구현해낸다.
의외로 간과하는 사실이, 부띠끄 브랜드의 이미지메이킹에 밀려 약간 저가형 이미지로 굳어진게 보스와 던롭/MXR인데 이 두 브랜드야 말로 페달 업계의 대표적인 공룡 기업이자 대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근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나름 감성이 맞는 부분도 있고 빌드 퀄리티도 어중간한 근본없는 부티크 제품들보다는 훨씬 완성도도 높다.
특히 근본과 더불어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 감성의 영역인데, 저가부터 고가까지 라인업이 고루 포진되어 있고 어중간한 부티크 브랜드보다 훨씬 나은 퀄리티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자칭 부티크' 라고 하는 브랜드들이 기존에 있던 설계에서 부품 몇개 바꾸고 외관 좀 예쁘게 해서 비싸게 팔아먹는 짓거리들을 자행하는데. 피트코니쉬처럼 업그레이드/디벨롭 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냥 뭐 옆그레이드 수준도 안되는 것들이 태반이다. 처음 딱 쳤을땐 나쁘지 않다가도 이내 그 MSG 같은 소리에 금방 질려버린다. 근본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을 곡해해서 이해하면 안되는게, 부품 몇개 바꾸는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러고도 소리가 원래만 못하다는게 문제다.
이런게 바로 근본이 없다는 거다.
상술한 브랜드들 제외한 대부분의 페달 브랜드의 제품들은 특별히 오리지널리티는 없다고 보아도 거의 무방하다. 대부분 오리지널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복각 혹은 모디한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빌드 퀄리티와 감성 그리고 당연하게도 소리가 좋은 브랜드를 골라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원류가 되는 페달들을 먼저 경험해보고 그다음에 부티크 브랜드를 경험해 보는것도 좋다.
2000년대 들어 풀톤과 아날로그맨을 시작으로 부티크 페달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둘다 미국제라는게 공통점인데 재미있게도,
악기에도 그 나라의 어떤 정서가 그대로 소리와 만듦새 그리고 디자인에 반영되어 있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빈티지도 동일하다. 오히려 빈티지가 더 심하다.
거의 자동차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미국차는 튼튼 투박 효율성, 유럽(이라 퉁치기엔 워낙 많지만)은 공통적으로 성능도 중요하지만 무언가 감성을 많이 잡으려고 노력하는 느낌인데 이게 악기 사운드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미국 특유의 규격화와 효율의 정점인 브랜드가 바로 스트라이먼이라 생각한다.
의외로 스트라이먼은 3가지 기준을 다 갖췄다. 스트라이먼의 전신인 Damage Control 때부터 축적되온 노하우와 기술력은 이 브랜드가 근본이 있다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빌드 퀄리티도 훌륭하다.
Strymon Volante 때도 언급했지만 심미적인 감성부터 해서 이들의 전반적인 제품이 특정 제품의 디지털 기반 레플리카가 아닌 특징들만 모아 본인들 방식대로 이것저것 짜집기하고 사용의 편의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감성을 엿볼 수가 있다.
다만, 이 감성이 지극히 미국스러운 감성이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소리가 내 취향이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미국제 페달들이 MXR 제외하고는 그닥 큰 메리트로 다가오질 못했다. 소리가 취향적으로 좀 다가오질 않았다고 해야하나.
단, 펜더 앰프는 예외다.
유럽도 가만 생각해보면 영국제, 독일제, 이탈리아제 등등을 생각해보자. 진짜 자동차와 비슷하다.
북유럽제는 또 어떤가. 당장 떠오르는 대표적 브랜드가 두 가지인데,
딱 답이 나온다. 북유럽(둘다 덴마크제이다) 특유의 미니멀리즘과 극강의 효율성, 옆나라이긴 하지만 볼보를 페달로 만들고 이케아를 페달로 만들면 이런 느낌일 것만 같은.
이게 디자인에도 반영이 되고 사운드적으로도 반영이 되어있다.
독일제는 특유의 묵직 정갈 고급스러운 각잡힌 듯한 느낌이 있다.
영국은 또 어떠한가. 재규어 랜드로버 롤스로이스만 봐도 오로지 감성, 또 감성이다. 비용? 효율? 그런건 이 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감성, 소리 하나만 보고 만든다. 이 정도면 거의 광기에 가깝다.
그러니 그 감성이 와닿는다면 영국제 악기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아이폰 성능만 보고 쓰나? 감성으로 쓰는거지 ㅎㅎ
유명한 일화로 올림픽 이야기가 있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중국은
형형색색의 불꽃으로 하늘을 장대하게 수놓으면서
"야 너네 이런거 처음보지? 이게 바로 중국이야." 였다면,
런던올림픽 당시 영국은
폴메카트니가 공연하고 브라에언메이가 공연하면서
"야 너네 이거 다 아는거지? 이게 우리야." 였다고.
뭐 어디가 훨씬 간지나는지는 말 안해도...ㅎㅎㅎㅎ
2000년대 이후 이러한 기준을 나름 충족한다고 생각하는 브랜드가 두개가 있는데,
잼페달과 물론이다. 잼페달은 그리스, 물론은 다들 알다시피 한국제다.
둘다 디자인은 말할것도 없고, 빌드 퀄리티도 훌륭하다. 특히 물론 같은 경우엔 안에 기판에 에폭시 몰딩마저 틀을 만들어 부어놓은 듯한 정갈함으로 이런 부분까지 신경쓴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두 브랜드 다 빈티지 바이브를 잡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게 느껴지고, 빌더들 스스로가 사운드에 대한 자신들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고 그걸 설계를 통해 구현해 내는 부분에서 근본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운드적 취향으로 호불호는 많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이부분에선 잼페달이 좀더 대중적이고 호불호 없는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취향이 갈릴지언정, 두 브랜드가 심미적인 감성과 사운드적으로 완성도가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거라고 본다.
이렇게 사소한 부분과 심미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브랜드가 페달을 허투루 만들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정도 마인드의 브랜드라면 그곳은 반드시 소위 말하는 "환자" 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당연하게도 이런 환자들의 사운드 기준은 나같은 막귀보다 한참 높다.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심미적인 감성이 진짜 중요한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런 감성이 충족될때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는 곧 연주 능력과 영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환자들은 미국보단 유럽, 일본 쪽에 훨씬 많다고 본다. 좀 심하게 이야기해서 미국 빌더들은 소리가 엇비슷하게 나오면 그냥 OK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다.
계속 근본과 감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데 페달도 일게 전자장치가 아닌 결국 악기의 영역이고, 이는 곧 감성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해당 브랜드의 근본과 감성을 살펴봐라. 개발자의 높은 사운드 기준과 철학을 엿보아라. 그렇다면 그 페달이 좋은지 후진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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